[Wanju(Jeollabuk-do), Korea -- reporterpark.com] Justin Park, 2020.03.16.Mon.
깊은 굴곡이 있는 큼지막한 바퀴, 털털거리며 거친 숨을 몰아 쉬는 터프한 엔진, 뒤집혔을 때 탑승자를 지키는 안티-롤오버 프레임 바, 주변을 잘 내려다볼 수 있는 창문 구조, 다양한 주행모드에 원하는 기어비까지 세팅이 가능한 차. 언뜻 보면 오프로드에 특화된 SUV같지만 최근 시승한 ‘다목적 트랙터’ MT4 얘기다.
혹시 지금 어떤 농기계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면 그게 맞을 거다. 단지 최신형이라는 점이 좀 다르겠지만. 어쨌든 농업용으로 주로 쓰이는, 가장 현대화된 농촌의 트렌드를 반영한 그런 제품이라는 점은 참고하자. 자동차처럼 에어컨도 있고, 카오디오도 있다. 게다가 자율주행도 가능하니까 절대 무시하지 말 것.
◆어서와, 트랙터는 처음이지?
트랙터(tractor)라는 말이 입에 착착 붙지 않는 건 농촌에 살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나이 탓일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경운기라는 단어는 익숙할 수도 있겠다.
TV예능프로나 드라마, 영화에서 농촌풍경을 담을 때면 꼭 등장하는 게 경운기다. 땅을 뒤집어 표면을 부드럽게 하고 수분을 관리하며, 통기성을 높이는 작업이 경운작업이고 그 일을 하는 기계를 뜻한다.
경운기 이전엔 ‘소’가 그 역할을 담당했다. 혹시나 바로 떠오르지 않으면 이미지를 따로 검색하길 권한다. 그리고 소에 쟁기를 걸어 땅을 고르는 모습은 역사 교과서나 민속박물관에서도 볼 수 있으니 참고하자.
어쨌든 경운기는 소를 기계가 대신한 듯한 형태로 이뤄졌다. 엔진과 바퀴가 앞에 놓이고, 작업자가 긴 막대 손잡이를 쥐고 방향과 세기를 조절한다. 쟁기 대신 수레를 매달면 짐을 싣거나 사람이 탈 수도 있다. 기계가 힘을 내느냐, 소가 힘을 내느냐의 차이로 생각하면 이해가 쉽겠다.
그런데 이번에 탄 건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 형태다. 세대가 바뀌면서 자동차에 한층 더 가까워졌다. 농촌의 인구가 줄면서 적은 인원이 대규모 경작을 담당할 수밖에 없다. 즉, 혼자 많은 일을 하려면 기계의 힘을 더 빌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된다.
독일이나 미국 등 해외에서는 이미 소규모 경작인이 대다수가 먹을 작물을 재배하는 게 일반적인 모습이 됐다. 소규모 소량생산이 아닌, 대규모 대량생산체제로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안전도 챙겨야 한다. 브라질처럼 땅덩어리가 넓은 곳에선 자율주행시스템의 가능성이 테스트 중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글로벌 트렌드에 발맞춰 점차 변하는 중이다.
어쨌든 이 시대의 농기계를 포함한, 트랙터는 예전과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발전했다. 누구나 쉽고 안전하면서도 빠르게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어야 해서다.
◆토끼, 거북이, 달팽이 그림의 의미는?
가족이 농장을 하지 않는 이상 트랙터를 타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자동차처럼 취미로 사 모으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이번 체험기회가 너무도 인상에 남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트랙터를 몰 수 있는 기회다.
트랙터 체험장소는 전라북도 완주의 LS엠트론 교육센터. 평소 같으면 트랙터 출고를 앞뒀거나 구매한 이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곳이다. 또 신제품을 개발하기 위한 테스트 장소로도 활용된다. 이곳을 지난 3월3일 방문했다.
이날 시승 코스는 크게 2가지였는데 먼저 오프로드에서 체험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자동차로는 갈 수 없는 수준의 물 고인 진흙탕을 지나 로더(삽)를 이용해 흙을 퍼담는 교육을 받았다.
먼저 기본적인 작동방법에 대해 교육이 시작됐다. MT4 트랙터에 타는 건 중형트럭에 올라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최저지상고가 390mm, 높이가 2690mm나 된다. 운전석은 꽤 푹신했다. 대형트럭이나 대형버스의 시트가 떠오른다. 시트에 에어서스펜션이 적용돼 탑승자의 피로를 줄여준다.
운전석 주변을 둘러보니 기본적으로 자동차와 비슷하면서도 레버가 훨씬 많다. 주행과 관련된 건 주황색이다. 왼쪽엔 부변속기, 오른쪽 주변속기, 그리고 로더 조작 레버 뒤에도 속도조절 레버가 있다. 그리고 운전대 왼쪽 뒤편 컬럼에 F-N-R 레버가 설치됐다.
재밌는 건 속도조절 레버에는 ‘토끼’와 ‘거북이’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운전석 왼쪽 하단에는 달팽이가 그려진 버튼도 있다. 눈치 빠른 사람은 이미 알아차렸겠지만 토끼가 가장 빠르고 거북이는 서행을 뜻한다. 달팽이는 초저속 운행 시 필요한 기능이다. 보다 직관적인 사용방법을 강조하기 위한 센스다.
클러치는 시동을 걸 때만 밟으면 된다. 이후부터는 알아서 움직인다. 작업내용과 노면환경에 맞춰 주변속기와 부변속기의 기어 세팅을 끝내고 왼쪽 주행레버를 살짝 들어 F로 옮기면 가속페달을 밟지 않아도 스스로 움직인다.
시승한 MT4의 배기량은 2505cc며 69마력(PS)을 낸다. 기어는 28단.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큰 힘을 내기 위한 구조 떄문이다. 최고시속은 약 30km쯤이며 연료탱크 용량은 92리터다.
◆삽질(?)도 했습니다
이번에 체험한 트랙터에는 로더가 달려있어서 이를 직접 조작할 수 있었다. 이것저것 새로운 기계를 잘 다루는 편이지만 트랙터나 건설기계와 관련된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여서 꽤 신기했다. 게다가 전문 강사의 교육을 1:1로 받을 수 있는 기회라니 더 없이 좋은 찬스다.
강사가 계속 강조한 건 땅과 삽 부분의 수평이다. 수평을 잘 맞춰야 작업효율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어서다. 이것저것 많이 퍼 담을 수 있는 최적의 각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수평을 맞추느라 로더가 바닥에 닿으니 트랙터 앞부분이 살짝 들린다. 삽의 각도를 조절하니 앞 타이어가 다시 안정을 찾는다. 그상태로 전진하자 삽이 바닥에 긁히는 소리가 나며 흙이 담기는 느낌이 든다. 작업 장소에 따라 상황이 바뀔 수 있으니 작업자의 ‘감’이 가장 중요하다.
충분히 채웠다고 느꼈을 때 삽의 각도를 위로 바꾸면서 들어올리고 필요한 곳까지 이동해서 삽을 뒤집으면 흙이 퍽 쏟아진다.
중요한 건 앞뒤를 오가는 구동계와 로더를 작동하는 조작계를 함께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숙련된 작업자라면 이동하면서도 로더를 쓸 수 있다. 굳이 차에 비유하자면 자동차를 후진 주차할 때 움직이면서 여유 있게 운전대를 돌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미리 돌려놓고 앞뒤로 가는 사람이 있는 것을 생각하면 되겠다.
◆오프로드에 최적화된 구조
트랙터는 자동차처럼 바퀴가 달린 차륜식 휠형, 탱크처럼 무한궤도가 달린 크롤러형이 있는데 시승한 MT4는 차륜형이었다. 게다가 탑승공간이 별도로 마련된 캐빈형이고 네 바퀴를 모두 굴리는 4WD(사륜구동)방식이 적용됐다.
MT4의 앞바퀴는 뒷바퀴보다 작다. 단순히 어딘가로 이동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장비를 매달고 작업을 하는 특성 때문이다. 가변형 뒷차축이 적용돼 작업공간에 맞춰 뒷바퀴 사이 간격을 210mm까지 조절할 수 있고, 외장형 유압 실린더를 통해 무거운 작업기도 거뜬히 끌고 다닐 수 있다.
그리고 앞에 로더를 달아놨음에도 시야를 가리지 않는다. 캐빈 앞유리를 다른 트랙터보다 10cm쯤 더 넓은 아치형으로 설계해, 사각지대를 줄인 덕분이다. 로더를 높이 들고 이동할 때도 주변을 살피기에 좋다.
로더 작업 때는 거북이 그림에 놓았던 레버도 조금 더 토끼 쪽으로 올리고 기어 변속을 한 뒤 오프로드로 뛰어들었다. 바퀴가 헛돌면서 자세를 잡을 필요도 없이 각 바퀴에 골고루 강한 힘이 전달되며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물이 고인 곳도 미끄러짐 없이 가던 길을 가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일반적인 자동차에, 일반 타이어였다면 차가 옆으로 밀리거나 바퀴가 빠질 상황이지만 MT4는 원래 이런 곳에서 타도록 만들어진 만큼 오프로드가 잘 어울린다. 게다가 운전석은 에어서스펜션이 적용돼 차의 흔들림이 잘 걸러진다. 속이 울렁거릴 일이 없다.
재밌는 건 브레이크페달 2개가 붙어있다는 점이다. ‘편브레이크’로 부르는 기능인데 뒷바퀴 중 한쪽만 제동함으로써 회전반경을 줄이도록 돕는 장치다. 왼쪽페달은 왼쪽바퀴, 오른쪽페달은 오른쪽바퀴의 제동을 맡는다.
이는 자동차의 e-LSD(전자식차동제한장치)와 비슷한 개념으로 생각하면 된다. 회전축 안쪽 바퀴에 제동을 걸면 바깥쪽에만 힘을 주게 돼 코너를 보다 안정적으로 돌 수 있게 되는 원리와 같다. 하지만 편브레이크는 타이어와 구동장치 손상을 막기 위해 노면 마찰력이 낮은 곳에서 써야 한다는 점은 좀 다르다.
그래서 앞바퀴에 동력을 2배 더 많이 전달함으로써 회전반경을 줄이는 기능도 있다. 운전대가 돌아갔을 때만 빨리 돌고 바로하면 다시 앞-뒤 싱크가 맞춰진다.
제동력과 구동력을 활용해 회전반경을 조절하는 기술은 비록 투박하지만, 최신형 사륜구동차의 그것과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많아 신기했다.
◆세계로 뻗어나가길
세계시장에서는 존디어(John Deere), 캐터필러(Caterpillar) 등의 쟁쟁한 업체가 굳건한 자리를 지키고 있고, 자동차마니아에게 친숙한 브랜드로는 람보르기니(Lamborghini)도 있다. 일본의 쿠보타(Kubota), 이세키(iseki) 등이 LS엠트론과 영역이 겹치는 경쟁사다. 국내에선 대동, 동양 등이 명맥을 잇고 있다.
이번에 체험한 LS엠트론의 신차(?) MT4는 53~68마력 급의 유틸리티 트랙터다. 수도작(벼농사)이나 전작(밭농사) 모두 중부하 수중의 작업이 가능하도록 개발됐으니 소규모 농가는 물론 그 이상에서도 쟁기나 로터리작업 등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
국내 트랙터시장은 연간 1만대 수준이고, 그 중 유틸리티는 3000대쯤 된다. 특히 MT4가 포진한 세그먼트는 2000대로 LS엠트론의 MT4 트랙터 판매 목표치는 연간 1500대다. 유틸리티급의 절반이자, 전체의 15%를 한 차종으로 달성하려는 셈이다. 그만큼 회사가 MT4 트랙터에 거는 기대가 큼을 느낄 수 있다.
기대가 큰 건 그만한 자신감이 있어서다. 헤드라이트는 물론 작업등까지 화이트LED를 적용해서 밤낮 가리지 않고 일할 수 있고 여러 신기술을 통해 작업의 능률을 높일 수 있는 데다 가격경쟁력마저 갖췄으니 그럴 법도 하겠다. 일단 국내에서 1위라면 해외에서도 충분히 통할 가능성이 높다.
처음 타본 트랙터지만 의외로 다루기가 편했고, 거침없는 모습 속에서도 부드러움을 잃지 않아 편안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혹시라도 귀농을 생각한다면 이런 트랙터는 꼭 필요해 보인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타는 미니형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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